오늘에서야 6편을 씁니다. 앞에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이전글을 클릭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드디어 우리만의 가게를 오픈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가게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정말 꿈에만 그리던 가게였다. 볼틱마켓에서 일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게를 오픈하기 3일 전에 리버풀 지역신문사인 Liverpool echo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가게를 오픈하는 것에 대해서 신문에 실겠다는 것이었다! 이럴수가.. 너무 좋았다. 영국의 로컬신문사에 몇 번 나온 적이 있었지만 가게 오픈 하기 전에 이렇게 마케팅을 해 주다니 너무 감동이었다. 

 

 

[영국생활] 영국 신문에 내이야기가 나오다! St Helens Star

영국 신문에 내이야기가 나오다! 그저께(2/23) 우리 동네 St Helens Star Newspaper (http://www.sthelensstar.co.uk/) 에 제 기사가 나왔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기사가 나올 줄 몰랐거든요. ^^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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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tic Market favourite to open new Smithdown Road restaurant

The team has brought its opening date forward due to lockdown

www.liverpoolecho.co.uk

리버풀 에코에서 광고까지 해 주었기 때문인지 가게 오픈날은 정말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멀리서 택시를 타고 온 사람들도 엄청 많았고 줄이 가게밖으로 한참 길게 나와 있었다.   배달앱을 켜 놓을 수가 없어서 꺼 버렸다. 정말 성공적인 오픈식이었다. 

우리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 우리는 여러군데 마트에 우리 김치를 입점하고자 노력을 해 왔다. 오랜 노력 끝에 리버풀에 대학교 근처에 아시아 식료품점인  eJoy Asian Foods 한군데 입점을 했다. 

eJoy Asian Foods

중국인들이 고객의 대부분인데 중국인들이 한국 김치를 좋아한다. 가게를 오픈함과 동시에 리버풀에 위치한 다른 아시아 마트들도 연락이 와서 입점하라고 했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는 입점하려고 여러번 가서 문의를 했는데 거절당했다. 가게를 가지고 있다는 힘이 대단한가 보다! 현재 우리는 리버풀에 위치한 ChungWah Supermarket, W.H. Lung Liverpool, Sida (볼드 스트릿 지점, 런던 로드 지점, 머털 스트릿 지점)에 입점해 있다. 리버풀에 있는 거의 모든 아시아 마트에 입점을 하고 있다. 맨체스터에 위치한 W. H. Lung Manchester 에도 입점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나만의 가게를 오픈했고 열심히 일했다. 너무 너무 좋았다. 그 때는 마침 강제봉쇄령이 내렸을 때였다. 영국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것이 아주 미흡했다. 4월에 봉쇄령을 내렸다가 다시 8월에 해제했는데 해제한 동안 사망자수와 감염자수는 상상불가할 정도로 높았다. 다시 10월에 봉쇄령을 내렸는데 그 때 우리는 가게오픈 준비를 하고 11월 20일에 오픈했다. 

식당들이 다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가게는 배달전문점이라서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12월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봉쇄령을 해제했다가 다시 12월 말에 갑자기 봉쇄령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는 오픈과 동시에 봉쇄령이 내린 상태에서 운영을 하는 기간이 많았다. 

가게가 바빠지자 일도 일이지만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이 아주 힘이 들었다. 직원들의 생일선물도 챙겨주고 생일날은 근무를 쉬게 해 주고 여러가지 보너스를 주고 배려를 해 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나는 직원관리가 정말 힘들다고 느꼈다. 우리는 볼틱마켓과 우리 가게까지 운영하느라 정말 눈코뜰새 없었다. 

2021년 4월 12일이 되자 영국정부는 식당, 나이트클럽, 커피숍, 펍에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것만 가능한 것으로 제한적으로 봉쇄령을 해제했고 경기침체를 감당하지 못 했기 때문에 다시는 봉쇄령을 내리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자마자 약 30%의 식당, 커피숍, 나이트클럽들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5월 17일 월요일부터는 실내에서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이 가능하도록 완전히 해제했다. 

거의 1년 동안 봉쇄령이 내렸다 해제되었다 했기 때문에 요식업에 일하는 사람들, 셰프와 셰프 보조들, 바텐더, 웨이터들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다시 대학에 들어가거나 기술을 배우거나 다른 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쯤에 영국의 브렉시트도 같이 터지게 되었다. 브렉시트는 영국이 EU (유럽연합국)에서 탈퇴하는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기 전에 국민 투표로 결정되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와 몇가지 일로 인해서 시행이 뒤로 밀려온 상황이었다. 결국 모든 식당, 호텔과 숙박업, 나이트클럽들이 문을 열어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그 업종에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전업을 했고 많은 유럽인들이 브렉시트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리거나 유럽연합국에 속해 있는 경제강국인 독일같은 나라로 가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요식업 분야는 구인 대란에 몰리게 되었다.

인력난은 점점 심해져갔다. 볼틱마켓에서는 자체적으로 술을 파는데 바텐더와 웨이터가 확 줄었다. 입점해 있는 업체의 다른 사장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모두 인력난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 중에 새로 입점한 태국 음식점 사장이 우리가 없을 때 우리 직원들을 꼬드겨서 그 쪽 식당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윤리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자영업을 하는 사장들이 모두들 절박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영국에 있는 큰 프랜차이즈 업체인 Wagamama https://www.wagamama.co.uk 조차도 셰프와 식당 직원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점점 경력이 있는 직원은 모두 빠져나가고 경력이 없는 사람들을 뽑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다. 아주 큰 프랜차이즈 식당도 아니고 힘들게 닭을 튀기는 배달 음식점에서 일하려고 하는 직원은 정말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일을 기껏 가르쳐 놓으면 좀 더 일이 편한 커피숍이나 일이 편한 식당으로 옮겨 가곤 했다. 처음에 직원이 생겼을 때는 잘해 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이젠 점점 지쳐갔고 잘해 준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했다. 영국에는 일자리가 너무 많았다. 

그나마 볼틱 마켓에는 직원을 구하기가 조금 더 쉬웠다. 분위기가 젊은이들이 놀고 먹는 분위기에다가 여러 다른 가게들이 있으니 작은 가게보다 마주하는 사람도 많아서 좀 더 재밌고 또한 시내 중심에서 가까워서 대중교통편이 좋다. 우리 가게는 학생들이 많이 살고 시내 중심에서 멀지는 않지만 대중교통편이 볼틱마켓에 비해 좋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모자란 인력으로 일을 하다보니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급할 때는 주말에 친척들한테 아이들을 맡겨 놓고 와야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둘다 체력적으로도 힘이 들었다. 요식업은 정말 체력이 많이 든다.

그러던 중 볼틱마켓 사장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볼틱마켓 사장이 하는 말, "정말 오랫동안 볼틱마켓에서 영업을 했으니 이제 계약을 끝내야 겠습니다. 이제까지 고생했고 감사합니다." 사실 볼틱마켓에 두번째 입점했을 때 6개월 이상 계약을 주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중간 중간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영업을 못 한 시기도 많이 있었으나 6개월씩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거의 2년 반을 입점해 있었다. 볼틱마켓에서 입점하면서 리버풀에서 나름 명성도 얻었고 돈도 벌었지만 언젠가는 올 것이 온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일했던 볼틱마켓을 올해 3월 27일을 마지막으로 마감했다. 아래 사진은 볼틱마켓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다. 

오늘도 저의 긴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국에서 제가 한 일과 같은 일을 하시고 싶다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요즘은 잠시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또는 주재원으로 외국에 나가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외국에 나가서 집을 렌트해서 사실 때 주의하셔야 할 점을 알려드립니다. 저처럼 당하시는 일이 절대 없었으면 합니다.

외국에는 전세가 없고 월세밖에 없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영국에 올때 내가 살던 아파트를 팔고 와서 그 돈으로 모기지론를 받고 집을 구매했다.

우리는 리버풀 외곽지역에 오랫동안 살다가 리버풀에서 장사를 하게 되면서 이사를 왔야 했다. 영국에는 부동산 구매절차가 좀 복잡하고 다른 나라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음에 든 집을 찾았을 때 오퍼를 하고 오퍼가 승인되고 나서 집 열쇠를 받는데까지 평균 4-5 개월 걸리는데 코로나때문에 6-8개월이 걸린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때까지 집을 보러 다니는 시간까지를 1-3개월을 추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장사를 하는 관계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월세로 들어가서 시간을 갖고 집을 보러 다니면서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생각보다 월세를 구하는 것도 엄청 힘이 들었다. 코로나때문에 사무직에 일하는 사람들이 자택근무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런던처럼 집값이 비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지방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택근무가 늘면서 집에서 일할 공간이 필요하다보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거나 근무지 근처에서 살지 않아도 되므로 가족들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가는 사람들도 엄청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월세를 구하는 것이 전쟁이었다. 마음에 들어서 부동산에 전화하면 나갔다고 한다. 집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또한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있어서 자영업자한테 월세를 내는 것을 꺼리는 것도 한 수 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일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었다. 아주 우수한 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집을 사려면 집값이 좀 비싼 동네였다.

회사도 가깝고 동네도 좋았지만 집 내부는 오랫동안 세를 놓았던 집이라 그런지 카펫트가 저렴한 카펫트에 아주 오래 된 것이었고 마룻바닥도 아주 싼 자재였는데다 년식이 오래 되었다.

이사가자 마자 2일 후에 욕실에 세면대 아래에서 물이 홍수처럼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나는 남편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물을 막느라 어쩔 줄 몰랐다. 남편이 내 대신 타월들을 꺼내서 손으로 물이 나오는 것을 막고 욕실문을 닫고 나보고 이웃집들한테 가서 water stop tap 이 어디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다행히 맞은편에 사는 할아버지가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젊었을 때 배관공이었다고 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옆집 아저씨가 그 집에도 갑자기 물이 막 새어 나왔는데 마침 여행을 가고 집에 아무도 없어서 집 전체가 물로 가득 채워졌다고 한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공사를 하고 3개월 동안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면서… 헉. 

욕실이 이층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일로 인해서 아랫층에 천장에 물이 샌 흔적이 있었고 거기서 물이 떨어져서 아랫층 마룻바닥까지 좀 꺼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 부동산에 보고를 했다.

 

영국에는 아주 옛날에 지은 집들이 정말 많다. 1900년도 쯤에 지어진 집으로 추정된다. 1년을 살았는데 그 집에서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오븐이 두번이나 고장이 났다. 우리는 장사를 하느라 바빠서 외식을 많이 해서 집에서 요리를 한 적도 거의 없는데 두 번이나 고장이 났다. 오래된 오븐이어서 잘 작동이 되지 않았다. 한 겨울에 난방이 고장이 났는데 주택이라서 엄청 추웠다. 부동산에 이야기 해도 집주인은 고쳐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고쳤는데 작은 것들이 고장이 자주 나고 집주인은 고쳐줄 생각이 없어서 나중에는 그냥 우리가 돈을 내어서 고쳤다. 집주인은 부동산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주 화가 난 모양이다. 왜 우리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다른 영국인들처럼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지도 않는데 말이다. 영국에는 기술자들을 부르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내 집도 아닌데 결국 내 돈을 쓰면서 고쳐야 했다. 정말 악덕 집주인이었다.

동네는 좋았지만 우리가 살았던 변두리에 있던 그 집이 그리웠다. 그 집은 1998년도에 지어진 집으로 영국으로 치면 새집이다. 별로 고장이 난 적이 없었다. 오래된 집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우리는 결국 너무 불편해서 그 집을 떠나야 했다.

리버풀 변두리에 있었던 우리집


운이 좋게도 집을 장만해서 이사갔다. 이사가기 1주일 전에 어쩐 일인지 현관문에 유리가 조금 깨어져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도둑이 들어왔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가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깰 만큼 험한 동네도 아니었다. 그리고 업치고 덥친다 했던가. 부엌에 싱크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서 바닥으로 나왔다. 이런… 마지막까지.. 결국 일할 사람을 내 손으로 구했는데 그 아저씨 말로는 현관문이 너무 오래되어서 유리가 바람에 그냥 한 조각이 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현관에 유리가 떨어져나가 있으니 바람에 슬슬 들어오고 밤에도 안전한 느낌이 없었다. 결국 똑같은 유리를 유리가게를 수소문해서 구해서 교체했고 싱크도 우리 돈으로 고쳤다. 마지막까지 정말이지 30만원 상당의 돈을 써야했다.

마지막에는 정말 빨리 이사가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하루라도 더 있으면 하나 더 고장 나지 않는지??? 집에서 고장나는 것은 집주인이 해야 하는데 임대인이 계속 돈을 내어서 고쳐야 하는 이런 못 된 집주인이 있는 곳에 살게 되었던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치를 떨면서 이사를 나갔다. 이사를 간 후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정말 황당한 연락이었다. 집주인이 우리가 집을 damamge 했다면서 4840파운드 (약 800만원)을 청구한 것이다!

집주인이 청구한 내역

카펫트 교체비용 1800 파운드 (200만원)

마루 교체비용 1000 파운드 (70만원)

집전체 내부 페인트 비용 2000 파운드 (300만원)

창문 열쇠 20 파운드 (3만원)

마루 열쇠 20 파운드 (3만원)

황당하기 그지 없다. 카펫트는 저렴한 카펫트에다 이미 우리가 이사갔을 때 10년은 족히 넘은 카펫트였다. 카펫트의 수명이 8-10년인데 우리가 damage했다면서 비용을 청구했다. 마루도 laminate flooring이 이미 중간 중간에 damage가 되어 있었고 수명이 8년 정도인데 (비싼 laminate가 아니었다), 이미 10년은 더 되고도 남은 마루였다. 그리고 집에 물이 새는 일이 있지 않았던가? 1년 살았는데 액자도 하나 걸지 못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조금씩 색깔이 바래지는 것이고 우리가 입주했을 때도 페인트로 새로 도색을 해 놓지도 않았었다. 창문열쇠는 1개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 놔두고 갔는데 없다고 한다. 마루에 문이 있는데 거기 열쇠라고 한다. 우리는 그 열쇠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집주인은 우리에게 돈을 받아서 집을 새로 고치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 괘씸했고 분했다.

외국에서 월세를 처음 살아봐서 우리는 잘 몰랐다. 보증금 1000파운드 (150만원)은 정부에서 deposit protection scheme (보증금 보호제도)에 보장되어 있었는데 그 돈과 함께 3840파운드를 지불하라고 한다. 부동산에 전화해서 컴플레인을 하니 Deposit Protection Scheme 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의 입장을 대변할 수가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사 들어 갔을 때와 이사를 나왔을 때 반드시 사진을 구석구석 다 찍어서 증명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 놓지 못 했다. 이럴수가....

집주인이 직접 관리하는 집과 부동산에서 관리하는 집이 있는데 이 집은 부동산에서 관리하는 집이었다. 입주했을 때 부동산에서 여러가지 부분을 사진을 찍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우리가 이사나가고 난 뒤에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니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자료를 모두 이메일로 받았다. 현재 우리는 Deposit Protection Scheme에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며칠전에 우리 딸아이의 친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갔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영국에 1년동안 지내러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딸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여서 가족이 리버풀역에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고 하니 기차역으로 마중을 가고 싶다고 해서 리버풀역에 갔다. 딸아이의 엄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대학교수인데 영국에 안식년을 하러 1년 왔다고 한다. 딸아이가 친구랑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딸의 친구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 돌보면서 마지막에 이사한다고 힘들었죠?"

친구엄마 "진짜 힘들었어요. 마지막에 청소 완전히 깨끗이 하고 사진 다 찍었지요. 이거 잘못 하면 영국에 못된 집주인들한테 억울하게 사기 당할 수가 있거든요."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내이야기인데.."

친구엄마 "내가 옛날에 영국에서 석박사를 했거든요. 그 때 친구들 중에 못된 집주인을 만나가지고 억울하게 돈내라고 하는 일이 생긴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는 알고 있었지요. 집주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착한 사람들도 있어요. 근데 생각보다 못된 집주인도 엄청 많더라구요."

이럴수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았던 집은 위치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우리 전 임차인이 1년 살고 이사나갔다. 여기는 보통 계약이 1년이다. 부동산을 구할 때 임차인이 오래 살다간 집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임차인이 자꾸 바꼈던 곳이면 조심해야 한다. 아는 사람 중에는 앞에 임차인이 6개월만에 살고 남은 6개월 월세를 생돈을 내더라도 나가버렸던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은 정말 고장이 장난이 아니었고 집주인은 완전히 나몰라라 했다. 이런 집은 반드시 주의를 요해야 한다. 이사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가 잦은 집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나의 경험담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같은 일은 절대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영국 날씨로는 아주 덥습니다. 최고기온이 31도라니.. 영국에 와서 이렇게 더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날씨가 화창하니 너무 좋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들과 호수지역 (Lake District)에 여행 와 있어요. 여행정보도 곧 올리도록 할께요. ^^

Lake District (호수지역)

사람에 따라서 다른 문제인데 오늘은 향수병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외국에 살아보셨거나 아님 고향에서 멀리 살아보셨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껴봤을 향수병...

영국에 11년 전에 왔을때 한국인들은 만났는데 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몇 분이랑 이야기를 해 보니 이런 사람들도 있던데요, "그래요? 전 향수병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아요!"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들 개인차가 있으니까 향수병을 느끼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슬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향수병을 지독하게 경험했다. 나는 왜 이렇게 심하게 향수병을 느끼나 싶기도 했고 정말 향수병 따위는 저리가! 하고 살고 싶긴 했지만 내 마음을 바로 잡기도 쉽지 않다. 향수병은 말그대로 homesickness 로서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하면서 익숙했던 환경의 그리움이 심해지면서 오는 것이다.

대구 팔공산 가을 단풍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한국인이 거의 살고 있지 않구나 싶었다. 물론 런던이나 런던에 한인타운 근처에 산다면 몰라도 그 외 지역에는 한국인이 별로 살고 있지 않다. 향수병과 외로움을 느끼고 한국말을 하고 싶어 근질근질할 때는 맨체스터에 몇몇 안 되는 한국인한테 연락을 해서 만나곤 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만남이 나의 향수병을 근본적으로 풀어주진 못 했다. 잠시 기분이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장기간으로는 역시 '나는 우리나라가 너무 그립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내가 예전에 쓴 글 중에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 이라는 글이 있는데 한 번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 생활]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 다들 연말연시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예전에 한국에 살 때 연말연시 때 모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전에 보통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회식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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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이 심하게 찾아올 때면 우리 남편과 시어머니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번이지 시차가 너무 달라서 그 때마다 전화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결국은 여기에서 나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한국에서의 삶을 들으면 어쩔 때는 더욱 그리웠다. 친동생의 회사생활에서 힘든 일들을 들어도 그냥 투정으로만 들리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가장 좋은 극복방법 첫번째는 한국음식을 먹으며 드라마를 본다.여기는 한식집이 별로 없는데 직접 가서 사 먹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서 먹기도 했다. 떡뽂이나 만두 같은 걸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 조금 풀리기도 한다.

카레 떡뽂이 레시피

 


두번째 방법은 엄청 바쁘게 사는 것이다. 사실 나는 장사를 시작하고는 너무 너무 바쁘니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잠시 쉴 때면 향수병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럴 때는 혼자서 되뇌이곤 했다. "외국에 산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라고... 혼자 등을 톡닥 톡닥 쳐 주면서..

세번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는 향수병이 많이 없어졌다. 이것은 내가 생각할 때는 감정을 분출하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또한 소통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대가족에서 자랐고 친구들도 항상 곁에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환경이 찾아오니까 소통이 막혔다고 하나... 글을 쓰면서 나는 스트레스도 풀고 향수병도 많이 없어졌다. 블로그를 쓰기가 쉽지 않다면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네번째 방법은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향수병이 심해 질 때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고 그러다보면 더욱 우울해지곤 했다. 막상 운동을 시작하면 엔돌핀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분이 업된다. 운동을 시작할 때도 혼자 하지 말고 체육관에 가서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다섯번째 방법은 큰 도시로 이사가는 것이다. 대구에서 자라나 살았는데 유럽은 대도시도 우리나라 대도시보다 조용한데 작은 마을에 살다보니 좀 답답했다. 리버풀로 이사오고 나서는 좀 나아졌다. 답답하면 커피 테이크아웃도 하고 쇼핑도 잠시 갔다 오면 맘이 풀린다.

여섯번째 방법은 여유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 짧게 여행을 가는 것이다. 꼭 해외가 아닌 가까운 곳이라도 좋다. 잠깐 멀리 가서 힐링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향수병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스페인 여행

일곱번째 방법은 식물이나 화초를 기르는 것이다. 나는 식물을 기르면 물을 주면서 식물과 대화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하고 밤에는 "잘 자" 한다. 그러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굳이 정원이 없어도 작은 화분만 키워도 향수병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영국에 와서 정원 손질하는데 열중하시는 한국인분도 보았는데 정신적으로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고 하셨다.

여덟번째 방법은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다. 가끔씩 고아원에 가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그런 일을 하다보면 나보다 훨씬 힘들게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흙수저면 어떤가? 부모님이 따뜻하게 양육해 주셔서 성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고아들에게는 얼마나 부러운 것일까?

아홉번째 방법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장점들을 쭉 적어본다. 나라마다 다르니 한국에 살아서 좋은점과 영국에 살아서 좋은점이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그런 것들을 쭉 적어보고 나면 내인생이 그리 나쁘지 않구나 싶어서 마음이 괜찮아 진다. 나는 아직도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장점들만 자꾸 생각되면 향수병이 더욱 심해진다. 영국에 살면 좋은점들을 막 각인한다. 나에게는 영국에 살면 좋은 점들은 자녀교육, 정원이 있는 것,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사는 것, 조용한 것 등이다.

열번째 방법은 이건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닌데 나는 와인 한잔을 마신다. 많이는 안 마시고 한 두잔 마시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그러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한 두잔 마신다고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향수병이 들 때마다 마시면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레드와인보다 Prosecco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한다.

Prosecco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는 방송을 예전에 한 번 본 기억이 납니다. 외국에서 살면서 향수병이 생길때 극복하는 저만의 방법을 써 보았습니다. 어때요? 도움이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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